티스토리 뷰
목차
안과에서 예약 전화를 받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듣는 문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녹내장인데 저도 검사를 받아봐야 할까요?” “어머니가 치료받고 계시는데 저도 유전될까 봐 걱정돼요.” 이처럼 가족력이 있다는 이유로 검사를 고민하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아버지가 녹내장으로 치료받고 계신다며 내원한 환자분이 있었습니다. 시력이 떨어졌거나 눈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니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병원을 찾으셨다고 했습니다. 검사를 마친 뒤 의료진은 현재 시신경을 비롯한 검사 결과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다시 확인해 보자고 안내드렸습니다.
환자분은 “괜히 걱정만 했네요.”라며 안심하고 돌아가셨지만, 저는 오히려 그 시점에 병원을 찾으신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녹내장은 통증이나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질환이 아닙니다. 그래서 증상이 나타난 뒤보다 불편함이 없을 때 현재 눈 상태를 확인해두는 것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녹내장이면 자녀도 반드시 녹내장이 생기는 걸까요? 가족력이 있다면 언제부터, 얼마나 자주 검사를 받아야 할까요? 병원에서 실제로 자주 받는 질문을 중심으로 하나씩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부모님이 녹내장이면 나도 유전 가능성이 있을까?
가족력이 있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역시 이것입니다. “부모님이 녹내장이면 저도 결국 녹내장이 생기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녹내장은 유전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질환이지만,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녹내장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가족력이 없어도 녹내장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녹내장은 나이와 안압, 시신경의 구조, 혈류, 고도근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처럼 가까운 가족에게 녹내장이 있다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발생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과 진료에서도 가족력은 꼭 확인하는 항목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부모님의 녹내장 진료를 계기로 자녀분도 함께 검사를 받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첫 검사는 단순히 정상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현재 시신경과 망막신경섬유층의 상태를 기록해 두면 나중에 변화가 의심될 때 이전 결과와 비교할 수 있는 기준 자료가 됩니다. 특히 고도근시가 있는 분은 시신경의 모양이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게 보일 수 있어 안저검사와 OCT(안구광학단층촬영), 시야검사 등의 결과를 함께 비교하며 신중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면 “괜히 검사했다”라고 생각하기보다, 앞으로 내 눈의 변화를 확인할 기준점을 만들어두었다고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언제 검사를 받아야 할까?
가족력이 있는 분들은 대부분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눈도 잘 보이고 불편한 것도 없는데 꼭 검사를 받아야 하나요?” 눈이 잘 보이는데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쉽게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녹내장은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야가 조금씩 좁아지더라도 양쪽 눈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검진이나 다른 안과 검사 중 우연히 녹내장 의심 소견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진료실에서도 “잘 보이는데 왜 녹내장이 의심된다고 하시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이럴 때 의료진은 현재 시력이 잘 나오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안압과 시신경의 모양, OCT와 시야검사 결과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드립니다. 가족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나이에 검사를 시작하거나 같은 간격으로 검사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녹내장 치료를 받고 있다면,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우선 한 번 기본검사를 받아 자신의 시신경 상태를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특별한 위험 요인이 없는 성인도 40세 무렵에는 기본적인 안과검진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녹내장 치료를 받고 있다면 40세까지 기다리기보다, 현재 나이와 관계없이 우선 안과에서 검사 시기를 상담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가족 중 비교적 젊은 나이에 녹내장을 진단받은 분이 있거나 고도근시, 높은 안압 등 다른 위험 요인이 있다면 더 이른 검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미국 국립안연 구소(NEI)에서는 녹내장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에게 1~2년 간격의 종합적인 안과검사를 권고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첫 검사 이후의 검사 주기는 현재 나이와 안압, 시신경 상태, 각막 두께, 고도근시 여부, 가족의 진단 시기 등을 고려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몇 살부터 무조건 받아야 한다”거나 “무조건 1년에 한 번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기보다,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의료진에게 알리고 첫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에게 맞는 추적검사 주기를 안내받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가족력이 있는 분들은 검사를 마친 뒤 생활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자주 물어보십니다. “눈에 좋은 영양제를 먹으면 녹내장을 예방할 수 있나요?” “루테인을 꾸준히 먹으면 괜찮을까요?” 눈 건강에 관심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나오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특정 영양제나 음식만으로 녹내장의 발생을 확실하게 예방할 수 있다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금연, 충분한 수면은 전반적인 건강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생활습관이나 영양제만으로 녹내장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서도 영양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검사를 몇 년 동안 미루셨다가 뒤늦게 내원하는 분들을 간혹 만나게 됩니다. 반대로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꾸준히 경과를 확인한 분들은 작은 변화가 발견됐을 때 필요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녹내장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완전히 막는 방법은 아직 없지만,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일찍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면 시신경 손상의 진행과 시력 저하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가족력이 있다면 영양제에 의존하기보다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의료진이 안내한 시기에 맞춰 이전 검사 결과와 비교하며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어도 정기검사가 필요한 이유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력이 걱정돼 검사를 받았지만 정상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 “이제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몇 년 동안 다시 내원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물론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시점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앞으로도 평생 변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압이나 시신경 상태는 달라질 수 있고, 작은 변화일수록 이전 검사 결과와 비교해야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건강검진을 미루는 편이라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간 날 때 가야지.’라고 생각하면 1~2년이 금방 지나가기 때문에, 필요한 검사 시기를 안내받았다면 미리 예약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검사를 미루다 뒤늦게 오셔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봤지만, 미리 확인하고 안심하며 돌아가시는 분들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혹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녹내장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직 한 번도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다면, 너무 불안해하기보다 현재 내 눈 상태를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안과를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부모님의 녹내장이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일찍 내 눈 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중요한 신호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 걱정을 혼자 오래 안고 있기보다 한 번의 검사로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내 눈에 맞는 검사 주기를 안내받는 것이 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대한안과학회 눈 건강 정보 ‘녹내장’ · 한국녹내장학회 녹내장 질환 정보 · American Academy of Ophthalmology, What Is Glaucoma? · National Eye Institute, Glaucoma 및 Get a Dilated Eye Exam